안녕하세요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거룩한 식사>라는 시 두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뒤 쓴 추모시인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도 상당히 유명하고 다른 대표작품들도 많지만 제가 이 시 두 편을 가져온 것은 평범한 우리에게 잘 와닿는 주제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황지우 시인은 시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사용하여 기존의 시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시를 통해서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 보여드릴 두 편의 작품에서도 황지우 시인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들이 나타나있습니다. 그럼 아래에서 시 두 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라는 시는 황지우의 4번째 시집인 '게눈 속의 연꽃(1990)'에 수록된 시로, 독자들이 황지우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의 내용부터 기다림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이용해서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누구나 누군가를 기다려봤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한층 깊은 정서적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화자의 애타고 간절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이러한 문구들로 대상을 향한 기다림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 본 사람을 알 것입니다. 작은 소리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가슴을 졸인다는 것을. 문자나 카카오톡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려봤던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기다림은 어떤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화자는 시 중반부에서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기다림이 점층적으로 고조되다가 문이 닫힌다는 표현을 통해서 약간의 체념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후 화자의 태도가 바뀌게 되는데요. 그동안은 상대방을 애타게 기다리기만 했다면, 이제는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는 표현을 통해서 기다림이라는 애타는 감정을 극복하고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희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몸은 이 자리에서 너를 기다리지만 자신의 마음은 너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다 보니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나태주 <내가 너를> -
이 시에서도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편의 시를 읽으면 상대방의 부재나 관심에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기다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의미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기다림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그 사람을 사랑하면 할수록 기다림은 그에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황지우 <거룩한 식사>
<거룩한 식사>는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에 수록된 시로, 노인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나타낸 시입니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거룩한 식사> -
식사 한 끼를 먹는다는 건 평범한 일이면서 동시에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생존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밥 한 끼를 어떤 사람은 일부러 남기거나 적게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먹을 게 풍부하지 않던 예전에는 라면, 계란프라이, 김과 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겨 먹던 음식들도 귀해서 잘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겪은 분들은 음식과 밥 한 끼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 같습니다.
시 속의 화자는 분식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계시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고 어릴 적 동생과 식은 밥을 먹으며 숟갈 싸움하던 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짓습니다. 지금이야 '혼밥'이 익숙하다지만 이 시를 적은 1998년도에는 혼밥이 익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함께 밥을 먹어 줄 사람도 없고 저렴한 라면 한 끼로 배를 채우는 걸 보니 자신의 어린 시절 가난했던 모습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이 노인처럼 살기 위해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 식사를 이 시의 표현에서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이 이해가 갑니다.
저도 이 시를 읽으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라면 수프, 케첩에 밥을 비벼 먹기도 했던 어린 날.. 반찬이 없어서 삼겹살 한 점과 밥 한 공기를 먹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누나와 같이 밥을 먹다 잠깐 화장실 간다고 나가면서 혹시나 내 반찬을 먹지 않을까 하며 다시 돌아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반찬에 손을 대고 있던 누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에게는 티 내지 않고 누나도 배가 얼마나 고프고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고 가난했던 시절이 슬프게 다가옵니다. 지금도 여전히 돈이 많지는 않지만 적당히 식사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 무료 급식소에서 줄을 몇 시간씩서 계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눈물이 울컥합니다. 이 분들에게는 한 끼 식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질까요. 오늘도 거룩한 식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편안하게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 포스팅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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