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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좋은글

감성 에세이 - 우연히 만난 달팽이에게 힘을 얻다

by 감성스피치 후니 2022. 4. 27.

2022년 4월 26일 화요일. 부산 버스파업이 새벽에 극적으로 협상 타결됐다. 아침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전날부터 걱정을 많이 했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요란하게 울리는 긴급재난문자에 잠을 깨긴 했지만,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면서 기분 좋게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까지 버스 기사님들의 임금이 2년동안 동결되었는데, 시민의 발이 되어주시는 소중한 분들에게 그런 대우는 옳지 않다. 어느 영상에서 보니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던데 기사님들의 처우가 더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다행히 난 출근을 잘했다. 출근길에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고, 버스도 제시간에 잘 맞춰서 왔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갑자기 없어지면 참 당황스럽다.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매사에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달팽이를 구해줘

 

출근하고 회사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졌다. 올해는 너무 가물어서 비가 좀 많이 내려줬으면 했는데, 그동안 안 내리던 게 오늘 몰아서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회사에 업무가 많아서 바빴는데 날씨도 습하고 해서 몸이 더 지쳤다. 축 처져서 땅을 보고 걷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이대로 있으면 차에 밟히거나 누군가에게 밟힐 것 같았다. 내가 달팽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도 괜찮을까? 순간 고민이 됐다.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는데,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절대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2018 BBC 다큐멘터리다이너스티제작진들은 공식을 깨뜨렸다. 남극에서 황제 펭귄을 촬영하던 펭귄 무리가 협곡에 갇혀 영하 60도의 추위에 떨고 있었다. 거기 있던 펭귄들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삽으로 펭귄이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때촬영감독 로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상황만 두고 생각했다. 원칙은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우리의 결정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옳은 결정을 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
길가에 있던 달팽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줬다

 

 

 

달팽이를 집어서 안전한 곳에 놓아주면서 나도 자연에 개입하고 말았다. 단순히 정말 오랜만에 만난 달팽이를 지키고 싶었다. 어릴 때는 비 내리는 날 벽에 보면 달팽이들이 많이 붙어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보기 힘들다. 달팽이들이 살기에 힘든 환경이 되었나 보다. 오늘 달팽이를 보기 전까지 난 달팽이를 잊고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 바쁘게 시간에 쫓겨 살아가서 일까. 달팽아 잊어서 미안해 오늘부터 다시 잘 기억할게.

 

 

 

달팽이 확대한 모습
힘내서 갈 길을 가는 달팽이

 

 

 

달팽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무거운 집을 들고 다니는 달팽이 모습이 무거운 짐을 가진 나의 모습 같았다. 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끈기 있게 나아가는 달팽이. 느려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보니 꽤 멀리 가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지만 천천히 조금씩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달팽이에게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달팽이처럼 먼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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